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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17일 월요일

등산의 교훈



큰애 학교에서 아버지와 딸이 함께 하는 등산을 한다고 해서 토요일에 참가했다가 여러가지 면에서 기억에 오래 남을 경험을 했다.

일은 등산 애호가인 교장선생님의 제안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뿐아니라, 어머니, 가족과 동반하는 것이지만 학생 본인만 가더라도 상관이 없었다.
1000m 이상의 산을 세 번 이상 등반하고 증빙할 사진을 제출하면 생활기록부에 남겨준다는 좋은 명분도 있었다.
산을 좋아해도 일부러 높은 산에는 가기 어려우니 경험자가 인솔한다면 좋은 기회이다.
더구나 딸애는 한번 제대로 된 등산을 하고 싶어했지만, 내가 데려갈 자신은 없었다.
참여인원은 대략 40여명이었다.

가기 전에 많이 걱정을 했다.
1000m가 넘는 산에는 20년도 더 전에 오대산에 올라가 본 것이 전부이고, 몇년 전 북한산에 올라갔다가 정상 직전에서 퍼져서 폐를 끼친 기억도 있었다.
연인산이라는 이름이 젊은 남녀가 등산을 하면 연인이 되서 돌아온다는 뜻이라지만, 실제는 연인이 가서 헤어져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왕복 6-7시간 이상의 팍팍한 등산이라  경험자가 속도를 적당히 유지하고, 낙오자를 잘 챙기지 않으면 어려울 법한 코스이다.

결과적으로 문제가 여러가지 생겼다.
대둔리에서 장수능선을 거쳐서 연인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이 계획된 코스였다.
그러나 버스기사가 원래의 계획된 출발지점을 지나쳐서 보통 명지산을 등반하는 경우에 이용하는 아재비고개와 가까운 철책 쪽문에 내려주었다. 상당히 걷기 전까지 인솔자 중의 아무도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한 분한테 지금 어떤 코스를 가고 있는지 질문했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
결국 20여분 쯤 지나서 어디에 있는지 확인되었고, 아재비고개에서 연인산으로 가기로 정해졌다.
아재비고개까지는 순전히 계곡이라 물에 젖은 돌밭, 바위가 지속되고, 계속 가파른 팍팍하기 이를 데 없는 코스였고, 아재비고개부터 연인산까지는 나름 굴곡이 있는 재미있는 능선이었다.

정상까지는 계획보다 시간이 30여분 지체되었다는 점말고는 그런대로 순조로웠다.
문제는 점심을 먹고 하산하면서 발생했다.
아재비 고개는 연인산과 명지산의 중간쯤에 있고, 일단 여기까지 오면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서 길을 잘못 들 가능성은 적다. 그런데 연인산에서 아재비고개까지는 두세번 정도의 갈림길이 나오기 때문에 능선을 타고 가야된다는 생각을 해도 가파른 바위능선 앞에서 옆길로 샐 수 있다. 일단 새면 돌아가는 길은 없고 그저 계속 내리막이다.
실제로 능선 중간에서 산을 잘 타는 선두는 벌써 사라진 상황에서 중간의 일행이 14여명 정도 올라온 반대쪽으로 내려갔다.

이미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아재비고개에 도착해보니 몇명이 일행이 사라진 것 같다고 한다. 딸이 없어진 엄마들, 아빠가 없어진 딸 등이 있었고, 딸과 같이 있던 딸 친구도 없다. 일부는 한 가족이 통채로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선두에게 연락했지만, 확인되지 않는다고 하고 그나마도 연락이 계속 끊겨서 몇명이 없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 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마눌이 딸에게 전화를 해보니 10여명이 같이 가고 있다고 한다.
딸을 찾던 한 아이의 엄마가 내가 갈림길로 갈테니 돌아오라고 얘기하라고 하고는 달려간다.
30여분 이상 하산을 했으니 일행들이 잘 돌아올 수 있을까 걱정을 했지만, 직접 찾아나설 능력이 없으니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잠시 후에 다시 전화를 해보니 일행들이 그냥 내려가버렸다고 한다.
애들 둘만 떨어진 것이다.

길을 잘 못 든 것을 알았고, 반대로 내려가면 일이 복잡해지더라도, 다시 올라와서 본진과 합류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일행인 애들을 버려두고 그냥 내려가는 것을 당시도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다.

결국 한시간 쯤 후에 애들 둘은 아재비고개에 나타났다. 초인적인 힘으로 산을 뛰어다닌 다른 아이의 엄마가 아니었으면 아마 더 걸렸을 것이다. 결국 나머지 일행 12명은 반대쪽으로 내려간 것이다.

산에서 의외로 전화가 잘 터지지 않았는데, 특히 계곡에 있는 경우에 그런 것같다.
통신사, lte, 3g, 전화기와 상관없다. 거기 있던 7-8명의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통화 시도를 해도 대부분 통화가 되지 않는다. 정상적으로 하산한 선두와도 연락이 계속 끊겨서 하산이 끝날 때 쯤에야 반대쪽으로 내려간 사람들이 몇 명인지 확인했고, 한명은 위치 확인이 되지 않다가 모두 하산한 후에 반대쪽으로 내려가서 통화가 가능해진 다음에야 확인되었다.

이렇게 산에서 한시간 반 이상을 허비하고, 반대쪽으로 내려간 사람들을 태우러 한시간이 넘게 돌아가고 그렇게 3시간을 더 흘려보냈다. 오는 길에 저녁을 먹고 학교에 다시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가 넘었다.

나처럼 체력이 딸리는 초보는 하산길에 다리가 풀려있으면 계곡의 젖은 바위에서 미끄러지면서 굴러서 몸 여기저기에 멍이 들고 까지고, 발톱이 들리고, 무릎을 펴기도 구부리기도 어려운 상태가 될 수 있다.
딱 그렇게 되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이 될 것이다.

문제는 산에서 몸이 그런 상태에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냥 조심하는 하산하는 것뿐이다.
만약 내가 길을 잘못 들었다면, 나라도 반대쪽으로 그냥 내려가서 민폐를 끼쳤을 것이다.
그러나 애들을 버려두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지금은 비만 오지 않으면 등산에 매우 좋은 시절이다.
하지에 가까워서 해가 길지만, 낮에도 산에서는 기온이 그렇게 높지 않다.
그래서 나같은 초보도 동네의 몇 백 미터짜리 산은 잘 다닐 수 있다.
그러나 험한 산은 경험자가 잘 이끌어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등산에 경험이 많은 분들이 있기는 했지만, 일행 대부분이 초보자에 체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라 무리스러운 계획이었다.
결과적으로 무사하게 돌아왔지만 전혀 안전하지 않은 산행이었다.


1. 등산 코스를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2. 그래서 버스기사가 잘못된 위치에 하차를 시켰지만 아무도 몰랐다.

3. 출발지가 잘못된 것을 알았을 때 시간이 지났더라도, 계획된 코스로 돌아갔어야 했다.

4. 초보자에게 1000m 이상의 봉우리 혹은 6-7시간의 코스는 무리이다.

5. 선두가 페이스를 조절하지 않아서 나머지 대부분과 계속 차이가 벌어졌다. 실종자들은 후미가 아니라 중간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6. 인솔자들이 갈림길에서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아무런 대비가 없었다.

7. 처음 보는 일행들끼리 서로를 식별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없었다.(수건을 나눠주기는 했지만 별 소용없었다)

8. 길을 벗어난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들어선 줄 안 이후에도 본진과 연락하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

9. 길을 벗어난 사람들이 원래 코스로 돌아오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

10. 길을 벗어난 사람들이 같이 길을 잃었던 애들을 보호하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



등산으로 학교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도 있다.
선생님들이 매우 학생들에게 자상하다. 과거에 내가 배웠던 분들은 대개 부모님 분위기였는데, 젊은 선생님들은 여학생들을 마치 오빠처럼 대한다. 또 연세가 있는 분들조차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친근하다.
하루지만 거의 16시간을 동행하면서 학교 선생님들을 가까이에서 본 것은 처음이다. 또 애들, 학부모들이 사라져서 모두들 함께 걱정을 하면서 겪었기 때문에 더 잘 알 수 있었다.

의욕적이고 학생들에게 친근하게 대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은 놀랍고 기쁜 일이었고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있었지만, 어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부 보호자들의 모습은 새삼스럽지 않으나 답답한 점이었다.

기억에 남을 등산을 했지만, 산에서 딸을 못 찾게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을 했고, 다른 학부모, 선생님들도 정도 차이는 있으나 비슷한 걱정을 했다.
능력을 넘는 등산으로 체력이 고갈되고, 실족하면 죽을 만한 바위능선과 계곡이 있고, 길을 잃어서 당황하고, 시간이 늦어져서 날씨가 어두워지면 누군가는 사고를 당한다.
거기에 사람들의 행태는 유사시에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부모들은 걱정을 했으나, 다행히 아이들은 전혀 겁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몸은 조금 아프지만 오래 남을 기억을 얻었다.
학교에 대해서는 좀 더 긍정적으로, 사회에 대해서는 좀 더 부정적으로 기준점을 옮겼다.




댓글 12개:

  1. 예전 많은 인원이 등산을 할 때 무전기를 갖고 갔더니 좋더라구요. 선두 페이스가 빠를 땐 나무에 천조각 등으로 표시를 해주면 좋습니다. 페이스 조절을 해준다면 더 좋구요.
    등산이 힘들다는 생각 보다는 지겹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별로 내키지 않더라구요. 혼자서는 간혹 가고 싶어집니다.
    학교에 대해선 예나 지금이나 긍정적인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데, 그 학교 선생님들은 좋으신 분들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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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전기는 산에서 연락이 끊기는 일이 없겠군요.
      다음 행사에는 그런 준비들을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제는 단체 등산에 따라갈 생각이 아예 없어져서, 그냥 잘 되기를 바랄뿐입니다.
      등산이 힘든 것이 아니라 지겨우면 참 좋으시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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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가끔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이 좋아 해서 남에게 전파하고 싶은건지...
    아님 자신의 체력을 과시 하고 싶은건지... 무리한 산행계획과 비준비로 인해서.. 같이 갔던 사람들을 고생으로 몰고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고는 내려와서는 한마디 합니다.. "이런게 다 추억이야.."

    (그래도 선생님들이 자상했다니 아주 좋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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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벌써 이틀 지나니 추억이 되기는 했는데, 절대로 무리해서 산에 따라가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여학교에 남자선생님들이 몇분 밖에 없을텐데 남자선생님들만 산에 오셨고, 여선생님들은 다섯분정도 새벽 6시반에 배웅하려 나오셨네요. 이유가 있겠지요. 그래도 선생님들이 어떤분들인지 보니까 마음이 매우 편해졌습니다. 일부러 그런 기회를 가질 수는 없으니 결과적으로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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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큰일날뻔 하였네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나할것 없이 어떻게 되겠지라며..
    너무나도 편안하게 자가당착적으로 안전 불감증에 빠져 보이는데 저러다 큰일나면...
    생각만해도 아찔하였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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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처음에는 없어진 것을 확인했지만, 체력고갈로 도저히 찾으러 갈 수는 없으니 그게 가장 답답했네요. 부모역할을 하려면 뭐가 되었든 능력이 필요한 세상같습니다. 다행인 점은 슈퍼어머니, 슈퍼선생님이 옆에 계셨다는 점입니다. 안전에 대해서는 다들 좀 더 고려하면 좋겠는데, 그런 얘기하면 좋지 않은 소리를 듣는 경우가 많아서 아직은 스스로 조심하는 것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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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재밌는(?) 경험하셨네요...

    산을 무척이나 좋아라해서... 결혼전엔 정말 많이 다녔었는데... 주로 산에 올라가서 사진찍기...

    다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산행길은 리드가 되어주셔서 보면서 많이 느꼈는데...

    말씀하신 이런 산은 필히 고수와 함께 해야되죠...

    제가 다닐때도 최소한 3명이상의 고수들이 무전기를 들고 선,중,후를 맡아서 다녔었더랬습니다...


    아마 교장선생님의 무리한 요구에 산행에 비전문가 이신 선생님들이 억지로 따라가다 보니 그런 일이 발생한듯하네요...


    산은 무서운(?) 곳이라서 항상 조심해야하는데, 별 사고가 없어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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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큰 사고가 없던 것이 다행입니다. 다들 경험이 생겼으니 앞으로는 좀 더 준비된 산행을 하겠지요. 무전기, 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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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큰 경험을 하셨네요. 저는 어질지 못해 산을 아주 싫어하는 편인데.. 글을 보니 자녀와 가게 될 때를 대비해서
    체력관리는 좀 신경써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어떤 이들의 한계를 넘어서는 상황을
    시험하게 되는 것은(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좀 그렇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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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산밑에 가는 것까지만 좋은 것을 보면 저는 반쯤 어진 모양입니다. ㅎㅎ.
      기본 체력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정말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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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큰 일 겪으셨네요. 그래도 잘 끝나서 다행입니다. 결정권자가 의욕만 앞서거나 경험이 부족하면 말도 안 되는 실수가 꼭 생기고 그 피해는 관련자 모두가 몸으로 때워야 하는 일이 되는데 그 교장 선생님에게도 아찔했던 일이 아닐까 싶네요. 이 번 일을 통해 뭔가 많이 배웠을테고 배웠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보니 가볍지 않게 구르신 것 같은데 크게 다치지 않으신 것 같아 다행이네요. 잘 쉬시고 회복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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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마 다들 배운 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애한테 온몸의 멍으로 생색을 내고 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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