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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1일 화요일

삼디오지


3d

전부는 아니지만 다수는 이걸 쓰리디로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삼디로 읽고 면박을 당했다고

5g

이것도 일부러 오지로 읽는다면, 차라리 온 국민이 앞장서서 삼차원 오세대로 쓰고 읽어야 할 지 모른다.

왜냐고?
삼디오지가 권력을 잡으면 수하들이 그 앞에서 전부 삼디오지 할 수 밖에 없을텐데 그러면 쓰리디파이브지를 탄압하고 숙청할 것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기우라고?
삼디오지 밑에서 쓰리디파이브지할 수 있는 수하가 있을 거라고?
벌써 삼디오지를 지지하는 자들이 인터넷에 줄을 서고 있다.

당파싸움으로 해가 지고 떴다는 예의 나라 조선에서 벌어진 예송논쟁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야말로 적군과 아군을 구분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들이 바로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직계 조상이다.
유학자들은 그런 무의미하지만 타협불가능한 문제로 사문난적을 가려내고, 사화를 일으켜 악의 씨를 제거하는 정치의 고수들이었다.

아무 것도 아닌 것,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은 오로지 피아를 나누는 상징으로 작용할 뿐이지만 사상과 이념이 담기기 시작하면서 감정을 고양시키는 도구가 된다.
밥그릇이 걸린 일에서는 오히려 타협이 가능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일에서는 타협이 불가능해지는 기적이 발생하는 것이다.

몇개월 사이 촛불과 태극기가 존재의 이유와 관계없이 당파성을 드러내는 상징이 되었고, 다른 목적으로 다른 자리에서 사용하기 불편한 것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 물건들은 그런 목적으로 쓰여도 큰 문제가 없다. 일상생활에서 촛불이나 태극기를 쓸 일이 뭐 그리 많겠나?

그러나 삼디오지가 당파를 드러내는 언어가 되면 한국은 옆나라에서 과거에 벌어진 문화혁명과 비슷한 시대적인 비극을 저강도로 겪게 될 수 있다.
'정치적으로 바르지 못한' 용어를 입에 담는 순간 편이 갈리고 쥐꼬리만한 지식도 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바보가 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장수하는 길이 될 수 있다. 바보를 강요할 수도 있고 스스로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향후에 발생할지도 모를 희극, 혹은 비극을 피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쓰리디 삼디를 금하고, 파이브지 오지도 금하는 것이 좋다.
삼차원 오세대만을 홍길동뿐 아니라 온 국민에게 허하는 것이 그나마 차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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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로 '삼디' 논쟁 끝낸 문재인(종합)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F21&newsid=04244326615895136&DCD=A00602&OutLnkCh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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