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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25일 토요일

gold, m2, oil, interest rate 20200725



금이 핫하다.
금의 가치를 가늠하기 위해 자주 비교되는 자산에 oil, copper, silver, dow 등이 있다.
물가와 비교해서 실질 금값을 보기도 하고, 이것을 실질금리와 비교하기도 한다.
최근 전세계 모든 국가에서 통화량이 급증하면서 통화량과 여러 자산들의 가격, 시총을 비교하는 것도 유행이다.

아래 그림은 몇가지 비교를 보여준다.
금값이 단기간에 급등했지만, 3000불 이상까지 올라가도 이상하지 않다.
이런 조건에서 금리는 더 낮아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금과 기름, 미국 명목 gdp, M2를 비교한 것이다.

금값은 전고점을 넘기고 있다.
기름값은 역사상 최저를 지나왔다.
미국 GDP는 꺾여 있고, 통화량은 사상 최고수준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기름을 빼면 장기적인 우상향 추세에서 크게 벗어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금과 M2의 비율이다.
0.2까지 올라가면 3500불 정도이다.



장기적으로 금값은 실질금리(금리-물가)와 반비례한다.
다시 말하면 금값은 (물가-금리)와 비례한다.

물가는 언제 어디서나 기름값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지금 금리는 covid-19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기름값이 -40불에서 바닥을 확인하고 올라왔고, 금리는 내년까지 낮게 유지된다면 금값이 오르기 좋은 조건인 것은 분명하다.





금값과 tips.
tips는 시장의 기대인플레이션을 반영하기 때문에 (금리-물가)보다 실질금리(금리-기대인플레)를 더 잘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매우 잘 동행한다.
최근 금값의 상승도 실질금리의 하락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낮은 실질금리가 저성장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면 둘의 동행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금리는 실질금리와 물가로 분해할 수 있다.
금값과 기름값은 각각 실질금리와 물가를 대표하고, 둘(전년동월비가 아니라)의 조합으로 금리를 근사시킬 수 있다.

금, 기름, 금리의 관계를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기름값이 낮거나, 금값이 높거나, 금리가 높다.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서 기름값이 올라가거나, 금값이 내려가거나, 금리가 내려갈 수 있다.






요약

금값이 올라가니 금리가 내려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2020년 7월 9일 목요일

korea export - 선택의 시간 20200709



6월 수출의 반등은 일시적인 것일까? 아니면 5년만의 바닥을 확인하고 다시 몇 년 간의 상승국면에 돌입한 것일까?

무역수지는 4월의 적자에서 벗어나 다시 장기간의 흑자를 유지하게 될까? 아니면 2008년처럼 여러 번의 적자를 지나게 될까?

답은 나에게 없지만, 중요한 선택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점은 명확하다.







https://runmoneyrun.blogspot.com/2020/05/korea-export-20200503.html


2017년 혹은 18년 부터 시작된 수출의 하락국면이 절정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1998년, 2002년, 2009년, 2016년과 비교해도 하락의 강도와 기간에서 결코 떨어지지 않는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2017년을 고점으로 시작된 무역수지의 하락추세는 과거 어느 시기와 비교해도 위험해 보인다.

2020년의 전 세계 침체 원인이 오로지 covid-19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회복에도 다른 많은 요인들이 기여할 것이고 그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점을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 전세계 정부, 중앙은행들이 풀어놓은 유동성이 원자재, 주식, 부동산 시장에서 놀라운 일들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유가 -40불, 동학개미, 로빈훗. 만스닥, 천슬라, 애플 2000조, 마오타이 중국주식시장 1위 등 많은 사건들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나는 더 신기한 일이 발생해도 여간해서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https://runmoneyrun.blogspot.com/2020/05/korea-export-oil-dollar-20200529.html


한국수출과 관련성이 높은 유가와 달러를 함께 표시한 것이다.

마이너스에 도달했던 유가가 역사적인 바닥을 확인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국 수출이 바닥을 확인했는지 확인하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하지만 가능성이 충분하다.

달러인덱스가 고점을 확인했는지는 불명확하다.
그러나 달러인덱스의 60%전후를 차지하는 유로의 영향이 크고, covid19의 확진자/사망자 숫자 추이가 경제재개여부나 정부/중앙은행정책보다 더 중요하다면 중국이 빨리 회복하고 있는 것처럼 유럽도 빨리 회복할 가능성이 없지 않아서, 유럽경제의 회복이 미국보다 빠르다면 유로강세가 상당기간 지속될 수 있다.


위에 보이는 90년대 후반 이후 한국 수출이 우상향하는 국면에서 세계경제가 둔화된 적은 없다.
한국에 대한 판단을 약간만 확장하면 전세계에 대한 판단이 된다.






https://runmoneyrun.blogspot.com/2017/10/korea-foreign-reserve-mb-m1-m2-20171007.html

외환위기, 금융위기 시에 나타난 원화의 급격한 약세는 한국의 위기를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보다 적은 환율의 변동은 위기여부보다는 펀더멘탈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통화의 토대와 직접 관련된 것은 물가, 경제성장, 외환보유액 등이고 정부/한은의 통화량과 금리에 대한 조작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위에서 통화량(M1)/외환보유액의 비율과 환율이 20여년 잘 동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외환보유액이 급감하면 원화 약세가 발생한다.
또한 외환보유액보다 통화공급이 과도해도 원화의 약세가 발생한다.

최근 통화량의 증가는 명백하고 외환보유액의 증가는 미미하다.
원화의 약세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요약

중요한 시점에 도달했다.



2020년 7월 2일 목요일

알림


6월 27일 아버지가 83세로 돌아가셨습니다.
이후 장례식과 삼우제까지 모두 잘 치렀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온 국민이 조심하는 상황에서, 알면 오셔야 된다고 생각하실 분들때문에 미리 알리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려운 가정의 차남으로 태어나 배우지 못하셨지만, 국민학교 졸업 후 10여년을 신문배달, 행상, 점원 등으로 일하면서 중학교 과정을 스스로 공부하셨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신문배달을 하던  관공서에서 청소와 심부름을 하게 되었고, 사환, 임시직, 기능직 공무원을 할 기회를 얻으셨습니다.
내부 승진 시험을 통해 일반직 공무원을 확충하던 70년대의 특별 채용에서 대졸자, 고졸자를 포함하는 수십대일의 경쟁자를 뚫고 일반직 공무원이 되신 것을 평생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이후 공무원 생활을 오래 하셨고, 공사로 바뀐 뒤로 정년까지 근무하셨습니다.


정년 이후 생활에 잘 적응해서 건강하게 사셨지만 5년 전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8개월 전에 거동이 불편해지시면서 요양병원에 입원하셨고, 이후에 또 다른 뇌병변이 확인된 이후 침대를 거의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로 1월까지 지내셨습니다


1월 한국에도 코로나가 퍼진 이후 2월부터 요양병원의 면회가 전면 금지되었습니다.
4월에 한번 외부 병원 진료를 위해 외출을 하셨지만, 그것이 가족들과의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은 가족 중 아무도 몰랐습니다.
나머지 가족들은 5개월 동안 전혀 면회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6월 27일 새벽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지병이 있고, 노쇠하셨지만 간호사, 간병인을 통해서 들은 바로는 전날까지 특별한 이상없이 식사를 하셨고, 눈을 마주치고 몇 마디 말씀도 하셨다고 합니다.


마지막에 아버지를 보셨던 의사에 따르면 당직 중에 연락을 받았고, 와서 보니 급격히 낮아졌던 혈압이 몇 십분 간  회복되는 듯하다가 빠르게 떨어진 이후 회복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 모든 상황이 약 한두시간 이내에 발생했고 가족에게 연락을 취한 것은 돌아가시기 직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15분 거리에 살던 가족이 있었음에도 아무도 임종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몇 달을 요양병원에 고립되어 홀로 지내셨고,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적절한 처치를 받으셨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마음 속에 연민과 의심과 분노와 회한이 끓어올랐지만 병원관련자들의  일방적이고 방어적인 대답 속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기는 어려웠습니다.
가족들은 마지막 한달 동안에 벌어진 몇 가지 상황에 대한 다른 불만을 토로했으나,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라 장례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큰 문제였고 병원에 사망 과정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것이 가족에게 폐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큰 고통없이, 오래 고생하시지 않고 돌아가셨다는 것에 위안을 받는 분도 있었습니다.


며칠이 지났고 당장 필요한 절차는 거의 완료가 되었지만, 터질 것 같은 가슴 속의 응어리는 그대로입니다.
아직 그 응어리가 슬픔은 아닌 것 같고, 위로받을 준비도 된 것 같지 않습니다.
기회가 되면 벌어졌던 몇 가지 일들을 기록하면서 마음의 정리를 하려고 합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