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2일 토요일

아이의 부상, 무시했던 실내 클라이밍의 위험 20221021


딸애가 한 석 달 전부터 실내 클라이밍을 시작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스포츠 클라이밍 붐이 불기 시작한 영향이다.

친구들 중에 꽤 여러 명이 이미 시작했고 아이도 친구의 소개로 시작한 후 재미가 붙었는지 틈만 나면 신림동, 서울대입구, 홍대, 강남의 클라이밍장을 돌아다녔다. 최근에는 수도권과 지방의 클라이밍장을 가겠다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나는 최근 몸무게가 늘어나고 있는 중에 전에 열심히 타던 따릉이는 지루해졌고, 소싯적에 북한산이나 관악산의 바윗길을 기어 오르는 것이 재미있던 기억이 있어서 딸의 인도를 받아 등록하고는 함께 다닌 지 2주가 지났다.

나야 초급자 코스 붙박이인데다, 코스 5개만 끝내도 팔이 굳어서 젊은이들의 멋진 동작을 구경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딸애는 작고 힘도 약하지만 나름 요령이 있어서 중급 코스를 푸는 것에 재미가 들려 있었고 전에 없이 승부욕도 보여서 2년 간의 직장 생활에 찌든 모습만 보던 아빠의 입장에서는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오늘 사고가 났다.

될 듯 말듯한 코스에서 한번 실패하고 투지를 불태우더니 두번 째 시도에 나섰다.

그러나 마지막 홀드 직전 3 m 높이에서 수평으로 매달린 상태에서 등을 아래로 한 채, 매트 전체를 천둥처럼 울리면서 떨어졌다.

얼굴은 통증에 질린 표정이었고, 몸을 옆으로 웅크린 채 꼼짝하지도 못하면서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잠시 쉬면 통증이 사그라들까 싶어서 가만이 있으라고 하고 잠시 지켜봤지만 호전되는 기미가 없었다.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이 바로 직원을 불러주었고, 직원들이 익숙하게 도와주기 시작했다.

애의 상태를 보고 자세를 유지하고 움직이지 말라고 하고, 나의 신원을 확인하고, 119를 부를지 묻고는 바로 불러주었다.

직원 한 명은 구조대를 기다리는 동안 얼음팩을 가져와서 등의 통증부위에 대주고, 다른 한명은 소지품을 챙기기 위해 나와 함께 움직여 주었다.

또한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애 옆을 지키고, 신고한 지 얼마의 시간의 흘렀는지 중간에 확인해서 알려주고, 119가 도착했는지 가서 확인해주고 떠나기 전에 나의 연락처를 확인해 두었다.


구조대와 함께 근처 종합병원으로 갔고, 몇 가지 검사를 한 후 다발성 척추 골절을 진단받았다. 7, 8, 9번 3개의 흉추 전방 부위가 y자 모양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다행히 척수나 큰 혈관에 이상 소견이 없고 신경학적 이상도 없으니 1주일 정도 입원해서 경과를 보자고 한다.

불행 중 다행이다.

코로나 검사 음성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 후 올려 보내고 나서 잠깐 숨을 돌린 후 확인해 보니  간호간병 통합병동이라 입원하면 면회가 제한되는 것이 아니고, 전혀 안 된다고 한다.

애가 의식이 멀쩡하고 휴대폰 통화가 가능하니 연락은 할 수 있는데 답답하기는 하다.

나도 그렇지만 애엄마는 걱정이 한가득이다.


실내 벽의 최고 높이가 5 m정도이고, 바닥에 30cm 짜리 매트가 깔려있고, 맨 처음에 낙법을 연습하기는 하지만 위험한 것은 사실이다.

응급구조사는 클라이밍장 사고를 처음 접하는지 줄을 매지 않고 암벽을 올랐냐고 물어봤다.

이게 상식이었다.

나는 상식을 놓치고 있었다.

줄을 매지 않고 벽을 오르면 누군가는 언젠가는 반드시 떨어지게 되어 있고, 매트리스가 깔려 있어도 위험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신나게 운동을 하면서, 위험을 잊고 있던 것이다.

딸애는 3m 높이에서 떨어졌지만, 만약 5m 높이에서 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딸애가 몇 달 후 완전히 회복 한 후에 다시 클라이밍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못하게 되더라도 몇 가지는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주위의 젊은이들이 매우 빠르게 직원들에게 연락해 주었다. 애가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보고 난 이후에는 꽤 많던 이용객들이 애한테서 가까운 곳의 벽을 전혀 이용하지 않아서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고 안정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더클라임 신림점 직원들은 매우 신속하게 움직여 주었다. 또 척추부상이 의심되는 부상자를 구조대가 올 때까지 전혀 움직이지 못하게 십여분이상 유지했고, 얼음팩도 다 녹을 때까지 끝까지 대주었고, 소지품을 빨리 챙길 수 있게 같이 뛰어주었다. 누군가 혼자 부상을 당했어도 필요한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다.

이것은 드믈게 좋은 경험이다.


5m 이하 코스에서 하는 볼더링이라는 것이 15m를 오르는 리드, 스피드 클라이밍같은 종목보다 안전해서 로프없이 하는 것이 국제 규칙인 모양이다. 그런데 코스에 따라서는 완전히 수평으로 혹은 비스듬히 꺼꾸로 매달리는 자세가 나올 수 있다. 그런 자세가 1 m, 2 m 높이가 아니라 3 m 이상에서 필요할 때 실수로 손을 놓치면 딸애같은 심각한 부상을 당할 수 있다.

클라이밍장의 매트리스는 tv에서에서 보는 것처럼 몇층 높이에서 떨어져도 안전한 에어 매트 같은 것이 아니다. 부상 위험을 줄이는 것이지 없애지 않는다.

처음 딸애가 클라이밍을 한다고 했을 때는 높은 데서 떨어지면 위험하지 않냐고 물었던 내가 딸애를 따라서 운동을 시작하고는 눈에 뻔히 보이는 위험을 간과했었다. 



지금은 그저 애가 더 심각한 부상을 당하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