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는 삶의 변동성을 높인다.
이란에서 지진이 나서 수십명이 죽었다.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는 폭발사고로 수십명씩 죽는 일이 흔하다.
이런 사건보다 미국 보스턴에서 테러가 나서 몇명이 죽었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미국에서 폭발사고가 나서 수십명이 죽었다.
이것은 테러로 몇명이 죽은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인가? 아닌가?
사람이 죽는 이유는 사고보다는 질병이 많다.
이제는 전염병보다는 암, 혈관질환, 기아 등이 더 많다.
이렇게 해마다 수억은 죽는다.
왜 모두 뉴스가 되지 않는가?
그러한 사망은 이미 인생의 일부이다.
교전지역, 분쟁지역에서의 테러, 전투에 의한 사망도 인생의 일부이다.
그러나 평화지역에서 테러에 의한 사망은 인생의 일부가 아니다.
테러는 민간인들의 삶에서는 기정사실이 아니다.
생존의 관점에서 위험이 크다는 것도 두가지이다.
하나는 살아남을 확율이 낮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가 죽고 살지 더 모호하다는 것이다.
위험한 장소가 존재한다.
위험한 시간이 존재한다.
위험한 사람이 존재한다.
이것에 대한 평가는 보험회사들의 전문이다.
그런데 테러는 이러한 평가를 무력화한다.
상대적인 위험이 비대칭적으로 변했고, 변동성이 커졌다.
경제적인 면뿐 아니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비용이 증가하게 된다.
앞으로 전세계인은 압력솥을 보면서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운동의 위험에 한가지가 추가되었고, 금연, 금주의 효용이 줄었다.
한반도에서 북한이 전쟁위협을 할 때마다 위험이 증가한다.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테러가 발생할 때마다 위험이 증가한다.
무의식적인, 암묵적인 계산에서 빼 두었던 위험이 추가될 때마다 한국, 미국의 비용은 증가하고 가치는 떨어진다.
그런 것의 뉴스 가치가 강도에 따라 지수함수적으로 높아지는 것도 당연하다.
내가 보기에 미국의 테러는 진상이 확인되고, 인생의 위험 계산에 충분히 반영될 때까지는 매우 중요한 뉴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