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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을 시장이 결정하도록 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핵심이다.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가격 경쟁을 저해하는 일체의 행위는 시장 조작으로 간주하고 상당히 높은 강도로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한국에서 생산자, 판매자들이 가격을 일치시키는 행위(상품의 최저 판매가격을 시장 밖에서 결정하는 행위)는 그 과정이 협의를 통한 것이든 주도업체의 가격을 따라서 변동을 시키는 것이든 '가격담합 price cartel, price fixing'으로 인정되는 순간 불법이다.
정부가 물가를 낮추기 위해 판매가격을 낮추어 일치시키는 행위(최고 판매가격을 시장 밖에서 결정하는 행위)는 '가격통제 price control'로 불법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이 정부가 가격을 일방적으로 고시하는 방식이 아니고 생산자, 판매자들의 모임과 협의를 통해 낮추도록 강요하는 경우 결과적으로 기업의 가격담합이 되고 불법이 된다.
시장조작이 기업주도이면 기업의 불법이고, 정부주도이면 정부의 합법/기업의 불법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적기구를 통해 '최저임금'(노동력의 최저판매가격)을 결정하고 그 이하의 임금을 주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불법이 아닐 뿐만 아니라 정의에 부합하는 행위로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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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bloomberg.com/news/articles/2015-05-02/buffett-says-minimum-wage-increase-isn-t-answer-to-income-gulf
"Buffett, the second-richest person in the U.S., said raising the minimum wage was “a form of price fixing” and instead favored reforming the earned income tax credit, a refund paid to low and moderate income individuals and couples."
버핏의 발언을 보면서,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상황이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시장에서 독과점이든 규제이든 가격 결정에 압도적인 우위에 있는 주체가 존재하는 경우 발생하는 price fixing, price control, price cartel은 질적으로 같다. 동일한 잣대로 평가하면 가격고정, 가격담합, 가격통제를 행위 자체만으로 불공정하고, 부당한 것이라고 결정할 수 없고, 시장경제를 위협한다고 비판할 수도 없다. 의도, 목적, 행위, 과정이 아니라 결과나 파급효과를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면, 법이나 도덕 어떤 평가기준을 적용하는 것도 실제로는 매우 어렵고 복잡한 일이 된다.
최저 임금 수준의 시급을 받는 노동자의 비중이 높지 않다는 미국의 경우에도 최저임금의 상승은 일자리의 감소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는 보수층도 있고,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단언하는 좌파도 있다. 버핏옹이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지만, 이런 일로 자본가의 본색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도 있고, 당파를 뛰어넘어 사려깊게 판단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것이 미국에서는 지속적인 논쟁거리가 된다.
한국에서는? 최저임금 상승보다 더 중요한 것은 최저임금을 지키는 것이라고 본다. 상승률은 적당한 물가상승률 중 하나를 골라서 자동으로 결정되도록 하는 것이 어차피 서로 말이 통하지도 않는 집단들끼리 협의하는 척하다 다 무시하고 정치적으로 결정하는 것보다 깔끔할 것이다.
최저임금은 커녕 그보다 적은 시급을 받는 노동자의 비율이 상당하다는데 도대체 최저임금이 왜 그렇게 안 지켜질까?
한국 고용자들이 미국 고용자들보다 악덕이라서.
처벌이 약해서.
생산성이 선진국보다 낮다는 한국 내에서도 서비스업 생산성이 뒤쳐져서.
최저임금 이하에도 버티는 외국인노동자들이 증가해서.
이 중에 답이 있기는 한 것일까?
만약 최저임금의 상승이 적당히 큰 폭으로 발생한다면 일자리의 숫자가 감소할 것인가? 글쎄.
평균임금이 증가할 것인가? 글쎄.
전체가계소득이 증가할 것인가? 글쎄.
불법/편법 고용이 증가할 것인가? 그것은 확실해 보인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서 최저임금을 적당히 상향하면 일자리를 크게 감소시키지도, 가계 소득을 크게 늘리지도 않는 미지근한 결과만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만약 최저임금을 몇%가 아니라 그냥 만원정도로 대폭 올려버리고, 정부가 어떤 식으로도 지원하지 않고, 최저임금 단속을 철저하게 하면서 한 3년만 지나면 지옥이든 천국이든 변화가 생기기는 할 것이다. 경쟁력없는 자영업자들의 퇴출은 보장될 것이고, 지역상권도 더 양극화될 것이고, 임금이 오른 사람도 일부 있을 것이고, 최저임금이하에서 노동을 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고. 옳은지 그른지는 모르겠고,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할텐데 가만히 있는 것이 답답하면 질러볼만은 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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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그래도 가계, 기업, 정부를 포함하는 인간의 행위와 그것의 결과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기사에 따르면 가격 결정 과정을 로봇에 맡길 경우 로봇이 담합하도록 프로그램할 수도 있고, 로봇이 학습을 통해 가격담합을 스스로 배울 수도 있다고 한다.
로봇이 가격담합했다...어떻게 처벌할까? http://www.etnews.com/20150429000025
http://www.businessinsider.com/robots-colluding-to-manipulate-markets-2015-4
'If an algorithm isn't programmed to collude, but ends up doing so independently through machine learning, it isn't clear that the law can stop it."
만약 알고리듬이 공모하도록 프로그램된 것이 아니더라도 머신러닝을 통해 독립적으로 공모하는 결과를 낳으면, 법이 멈출수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실물시장의 거래에서 로봇이 판매가격 담합에 이르고 가격이 상승하면 실수요자들이 수요감소로 반응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많은 거래는 자동화되어서, 인간의 판단이 배제된 상태에서 거래가 발생한다. 담합이 아니더라도 flash crash같은 가격의 급변이 일개 트레이더/프로그램에 의해 유발될 수 있다. 내가 이해하는 한 문제가 되었던 거래들은 로봇이 미래를 예측하고 거래하면서 발생한 것이 아니고, 과거의 데이타에 다른 로봇보다 빠르게 접근하면서 선행매매를 하다가 발생한 것에 가깝다.
만약 빅데이터, 머신러닝, 인공지능 등이 발전하고 더 많은 거래 프로그램이 미래에 대한 예측을 기반으로 하는 방식으로 바뀌면, 그런 프로그램이 수익의 극대화를 위해 손실에 대한 두려움, 법적 처벌에 대한 두려움없이 '공모'를 통해 가격을 열배, 백배로 끌어올리거나 반대로 끌어내릴 수 있을 것이다.
담합의 정의를 내리기조차 어려워지고, 담합을 막는 알고리즘을 내재화시킬 방법이 없다면, 기계의 목표수익률을 제한하는 것, 어느 이상의 수익률을 달성한 기계를 퇴장시키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한국에서 자주 보는 가장 단순하고 무식한 통제 방법(가격통제, 인터넷차단 등)이 어느 시점에 선진국에서 금융 시장의 붕괴를 막기 위해 도입되는 것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 사건이나 사고없이 관련된 규제가 선행적으로 도입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그 전에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을 대형 사건이 전세계 금융시장 어디에서든 발생하는 것을 기대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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