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3일 수요일

unfair but relevant


시장이 다르고, 서비스가 다르고, 상품이 다르다.
그것을 서로 비교하면, 아무리 조정을 해도 공정하지 않은 비교가 되기 쉽다.


Unfair Comparisons: Google And Facebook Vs. Messaging Apps
Revenue since Inception - Google vs. Facebook vs. Messaging Apps


그러나 활성사용자와 등록사용자의 차이가 있어도 초기 사용자 증가 추이를 비교하고, pc시대와 모바일시대의 차이가 있어도 초기 매출을 비교한다.

google과 facebook과 line과 kakaotalk을 비교하는 것은 여러가지 면에서 부적절해 보일 때가 있다.
기업의 특성이 다르고, 상식적으로 필요한 정보도 부족하다.

공정하지 않지만, 관련성이 있는 비교를 해야되는 상황은 변화가 발생하고 있을 때이다.
변화의 시기에는 다소 무식해 보이는 비교라도 해야 변화를 포착할 수 있다.
비교가능한 특성이 모두에게 공개되어 불편부당한 비교가 가능해지면, 이미 파괴와 창조의 시간은 지나간 것이다.


LGHH and RDEN



조회공시 요구(풍문 또는 보도)에 대한 답변(미확정)
1. 제목(주)LG생활건강, 미 화장품업체 엘리자베스아덴 인수추진 보도에 대한 조회공시 답변
2. 내용당사는 중장기 성장전략으로 다양하게 M&A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엘리자베스아덴도 검토중에 있으나,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확정된 사항은 없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추후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되는 시점 혹은 1개월 이내에 재공시 하겠습니다. 

(공시책임자) 금융부문장 장창순 

※이 내용은 거래소의 조회요구(2014년 4월 23일 08:41)에 따른 공시사항임
3. 재공시예정일2014-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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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EN은 지금도 비싸다.
시너지가 없다면, 프리미엄을 주고 살만한 회사는 아닌 듯.



RDEN Chart
RDEN data by YCharts



RDEN Chart
RDEN data by YCharts




RDEN Chart
RDEN data by YCharts




RDEN Price to Book Value Chart




RDEN Chart
RDEN data by YCharts







2014년 4월 22일 화요일

한국 상장기업의 배당성향이 낮은 이유





대우증권의 보고서 그림이다.

망해버린 아르헨티나를 제외하면, 한국의 상장기업들이 배당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당을 하지 않아서, 주요 선진국, 후진국 대비 배당성향이 가장 낮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저렇게 명확하게 이유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한국의 배당수익율, 배당성향이 낮기 때문이고, 한국의 배당이 낮은 이유는 대기업들이 배당을 적게 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중에서도 이익이 가장 큰 삼성, 현대차 그룹이 배당을 적게 하기 때문이다.


그럼 왜 대기업들이 배당을 적게 하는가?


재벌일가 그들만의 ‘배당잔치’…비상장 계열사 통해 거액 챙겨 네이버헤럴드경제 [경제] 신문에 게재되었으며 23면의 2단기사입니다.23면2단2014.04.14 오전 11:09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기업정책실장은 “모기업이 비상장 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줘서 생긴 이익을 (총수 일가가) 챙겼다면 이는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안”이라며 “제도적 견제장치를 마련해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재벌 일가들이 개인기업에 가까운 비상장 자회사를 통해 상장기업의 이익을 빼돌리고, 고배당으로 제 배를 채우는데 비해 소액주주, 기관, 연기금이 투자한 상장기업들은 투자기회도, 이익도 빼앗기고 배당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상장기업들이 이익을 빼돌리기 어려우면, 투자를 하든지, 배당을 하든지 할 것이고, 하다 못해 그냥 쌓아 두더라도 빼돌리는 것보다 소액 주주에게 돌아올 확율이 높아진다. 배당이 자본의 선순환에 기여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발생한 것이 아니더라도 주주의 권리에 대한 보호가 강화될 수 있는 여건이 생기고 있는 셈이다.

최소한 과거 언론들이 기업의 배당을 먹튀라고 무조건 비난하던 것에서는 한걸음 발전한 셈이다.




roads kill


동물 얘기가 아니고 사람 얘기다.

2008년 기준으로 한국의 보행중 교통사고 사망자 비율이 36.4%로 oecd평균의 2배이다.
한국이 평균을 왕창 높이고 있어서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3배에 가깝다.

최신 자료를 찾다보니 who에 아래와 같은 사이트가 있다.
관련된 2010 통계를 그림과 표로 정리해놨다.

http://www.who.int/gho/road_safety/mortality/en/

2010년에는 보행 사망자 비율이 37.8%로 증가했다.
줄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한국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이냐.


http://roadskillmap.com/



여기는 교통사고 사망자수 전체를 비교해놨고, 필요하면 보행중 사망자 비율을 확인할 수 있다. 관련한 기사, 보고서들이 많다. 저개발국에서 교통사고 사망자를 낮추기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보인다.


한국의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10만명당 14.1명이다.

미국은 11.4명.

이탈리아 7.2명.
캐나다 6.8명.
프랑스 6.4명.
호주 6.1명.
스페인 5.4명.
일본은 5.2명.
싱가폴 5.1명
독일 4.7명.
영국 3.7명.
스웨덴 3명.


터키 12명.
그리스 12.2명.
포르투갈 11.8명.


중국 20.5명.
러시아 18.6명.
브라질 22.5명.
인디아 18.9명.
인도네시아 17.7명.
베트남 24.7명.



수긍할만한 숫자들이다.
선진국과 아닌 나라의 구분이 명확하다.
유럽의 변방국들은 무늬만 선진국이었다는 것도 확인된다.
미국은 항상 복잡하다.

베트남처럼 급격히 발전하는 나라에 차가 늘어나면 사망자가 증가한다.
아예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북한은 10만명당 10.7명으로 낮다.

한국이 선진국보다 못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터키, 그리스보다 못할 것은 예상치 못했다. 성인남자의 평균수명이 가장 짧은 나라에 속하는 러시아와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선진국대비 교통사고로 죽을 확율 3배, 길가다 차에 치어죽을 확율 6-7배.
많이 좋아졌다는데, 아직도 그렇다.



wooden bucket model





picture source:
http://en.wikipedia.org/wiki/File:Minimum-Tonne.svg


동물의 영양소, 식물의 비료가 균형이 맞지 않으면 부족한 성분이 성장을 제한하고, 질병을 초래할 수 있다. 경제에서도 자본, 노동, 기술 등의 요소들 중에서 부족한 것이 전체의 성장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나무쪽 하나가 부러져서 샌다면, 그것만 바꿔주면 물 높이가 유지된다.
wooden bucket theory/model 나무 물통 이론/모델

단순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시스템, 균형, 평형, 정상상태가 중요한 동네에서는 역사에 한번씩 등장한다.

지금 한국에 그런 문제가 생긴 것일까?
나무쪼가리 하나 두개를 바꾸면 해결되는 상황일까?




picture source:
https://www.flickr.com/photos/lynkelwoohoo/7789370944/sizes/o/in/photostream/


찾아보니 빌려 써도 되는 사진이 있다.
오래되고 썩어서 여기를 뜯어 바꾸면 저기서 새고, 저기를 바꾸면 다시 여기서 새는 것이라면 ?
그런데 통을 바꿀 수도 없다면?


김순덕씨 기사
http://runmoneyrun.blogspot.kr/2014/04/blog-post_22.html




김순덕씨 기사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33808

“내 자식도 피해본다고 생각하면 사회 안전해질 텐데 …”
[세월호 침몰] 씨랜드 참사 때 아들 잃고 한국 떠난 김순덕씨


-도대체 한국에서는 왜 이런 사고가 반복된다고 생각하나.
 “여기에 와서 한국 국민은 교육을 잘못 받았고, 지금도 잘못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곳에서는 개인보다 타인이나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도록 교육받는다. 학교에서도 친구들과의 그룹 과제를 부여하고, 그런 것들을 잘하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한국은 나만 잘하면 된다는 식으로 교육받는다. 그렇다 보니 나만 피해 보지 않으면 괜찮다는 분위기가 생겨난다. 내 자식, 내 가족만 잘살겠다고 한다. 공동체 의식이 무너지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문제라는 얘기처럼 들린다.
 “불행한 대형 사고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변해야 한다. 내 식구, 내 자식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말 각자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금까지 본 세월호 사고 관련 기사 중에서 가장 공감되는 글이다. 이웃분 덕분에 보게 되었다.
통으로 퍼오고 싶지만, 일부만 인용하니 가서 전문을 보길 권한다.
만약 저런 얘기를 보통 사람이 하면 물타기한다고, 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준다고 비난받기 쉽다. 

집 문 밖을 나서면 바로 보이는 것이 계단에서 비상구를 막고 있는 자전거이다.
단지 밖으로 나가는 횡단보도에서는 건너는 중간에도 차 때문에 좌우 몇 번씩을 돌아보고 서야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뒤로 물러서야 한다.
일단 정지 하는 차가 거의 없고, 일단 위협하는 차는 많다.
마트에서 애들이 뛰어다녀도 말리는 부모, 점원이 없고 카트에 아무렇지도 않게 애들을 태우고 돌아다니면서도 애가 떨어지면 무슨 일이 생길지 걱정하는 부모도 없다.
이런 일이 부지기수이고, 블로그에 답답함을 토로한 것이 여러번이다.

안전의 문제는 공동체의 문제이고 시민정신의 문제이다.
그러니 일부가 비정상인 것이 문제가 아니고 전체가 비정상인 것이 문제이다.
비정상이 일상화되어 정상, 비정상이 구분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전부 다 남탓을 하고 있을 때 김순덕씨는 내 탓을 하고 있다.
한국에 김순덕씨 같은 사람이 소수가 아닐 때 바뀔 것이다.
그 전에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몇명을 감옥에 보내고, 법을 바꾸고, 조직표를 새로 그린다고 해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사회를 바꾸고 싶으면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오래 간다.
가장 좋은 교육은 솔선수범이다.
내가 닮고 싶은 부모가 되는 것.
내가 닮고 싶은 어른이 되는 것.
내가 닮고 싶은 뭔가가 되는 것.





91년 여름

대피에 대한 기억

2014년 4월 19일 토요일

파괴, 창조, 경제




2차대전이 대공황 끝냈다고?…통계수치가 만든 착시일 뿐 네이버한국경제 [경제, 사회]신문에 게재되었으며 19면의 TOP기사입니다.19면신문에 게재되었으며 19면의 TOP기사입니다. 2014.04.19 오전 3:36


매우 맘에 안드는 기사이다.

"1930년대 대공황과 관련된 두 개의 신화가 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이 대공황을 치유했다는 것이 첫 번째 신화고, 2차 세계대전이 대공황을 끝냈다는 것이 두 번째 신화다."

대공황과 관련된 신화는 저 두개뿐이 아니라 수도 없이 많다.
일본에서, 미국에서, 이제는 유럽에서 비슷한 신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엄청 가방끈이 길어서 노벨상까지 탄 사람들도 여기서 까이고, 저기서 까이고 있다.
경제학이 과학이라면 신화는 줄고 사실과 원리가 늘어야 하지만 별로 그렇지 않다.
가설이 늘어나는 것은 그나마 낫지만, 실제로는 그럴듯한 스토리, 내러티브만 늘어나고 있다.

위의 기사 중에

"2차 세계대전이 대공황을 끝냈다는 견해는 매우 위험하다. 이런 견해에 사로잡혀 있는 지식인들은 서슴지 않고 ‘전쟁과 지진, 그리고 정부지출이 경제에 이익이 된다’고 주장한다."

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에 대한 저런 천박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예전에 들었던 시나리오는 많이 다르다.
대개는 "제국주의 전쟁"과 관련된 얘기였을 것이다.

산업자본주의가 발전하면 금융자본주의로 진행하고, 자본의 규모가 커지고 독점이 강화되면서 일국의 산업과 금융은 몇개의 자본이 지배하게 되고, 경제같은 하부구조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과학, 철학 등의 모든 상부 구조도 카르텔을 형성한 독점 자본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된다. 일국 내에서 초과 이윤을 획득할 기회가 사라지면 다른 나라, 다른 대륙, 전세계에서 저렴한 자본과 자원의 공급을 찾게 된다. 다음 단계에서는 새로운 수요를 찾게 되고 다른 독점자본과의 충돌이 빈번해지고, 강도가 높아진다. 새로운 공급을 찾는 것보다 새로운 수요를 찾는 것이 더 어렵다.

충돌과정에서 나타나는 대립은 정치적, 외교적 수단으로 해소한다. 알다시피 전쟁은 외교의 연장이다. 국가간의 외교는 국제 독점자본의 이해를 대리하고 있고, 독점자본의 규모가 국가의 범위를 확실히 넘어서면 외교/전쟁은 이윤을 보존하고 늘리는 다양한 전략/전술의 하나에 불과하게 된다. 2차대전은 전세계가 완전히 분할되어 새로운 식민지를 개척할 수 없고, 새로운 수요도 만들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다.

음모론이 섞여있는 것처럼 보여도 저것이 20세기까지 자본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이 공히 세계대전을 이해하는 방식에 가까운 것이다. 경기싸이클에서 디프레션의 원인은 한마디로 초과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설비를 늘리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투자의 증가가 존재하는 수요를 과도하게 넘어서서 발생하는 것이고, 공급과잉이 사라지기 전까지 경기침체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공급과잉을 해소하는 방법은 수요을 증가시키거나 공급과잉을 해소하는 것이다.

수요, 공급 양 쪽에서 불균형을 한방에 해결하는 것이 전쟁이다.
패자와 승자 모두에게 마찬가지이다.
비슷한 것이 자연재해이다.
또 다른 것으로 후진국에 대한 원조, 후진 산업에 대한 보조가 있다.

전쟁, 자연재해는 그저 파괴로 보인다.
인간이 노력해서 만들어낸 가치가 그냥 사라지는 것이니 더 설명이 필요없다.
후진국에 대한 원조에 대해서는 다른 평가가 가능할 수 있다.
인도주의적이나, 제국주의적이나 어느 쪽이든 가치가 재생산된다고 볼 여지가 있다.
한국에 대한 60년대의 원조는 긍정적, 수십년간의 아프리카에 대한 많은 원조는 인종말살적이었다.
보조금은 전략적일 수 있고,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볼 여지가 있다. 경쟁력이 없는 산업은 쇠퇴하는 전통 산업일 수도 있고, 발전하는 초기단계의 산업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개는 가치를 파괴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창조적 파괴.
파괴적 혁신.

이런 고상한 것들은 기존에 없는 수요를 만들고, 새로운 공급, 새로운 투자가 가능하게 한다.
어떤 사람들은 초과 이윤이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 노동의 착취가 아니라 바로 저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사람들은 수십년간 모두 겪어 봐서 아는 일이지만 후진국에서는 저런 일이 항상 일어날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기껏해야 백년에 몇번 발생하는 특별한 일이라 똑똑한 사람들이 창조적 파괴를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저것이 하는 역할이 전쟁, 자연재해와 경제적인 측면에서 다른가?
정말 다른가?

파괴와 창조.
생로병사.
순환.

똑같다.

지구가 커지지 않고 외계에 식민지가 생기지 않으면, 순환하는 세상에서 죽음과 탄생은 동전의 양면이다.

창조적 파괴의 분명한 장점이 하나 있다.
과잉 공급된 설비를 태우는 것뿐 아니라, 과잉 자본을 태운다.
자본의 경쟁강도를 낮추고, 초과 이윤의 가능성을 높인다.
그러니 한국도 땅파는 창조말고, 파괴적인 창조를 하면 타버린 자본을 들고 있던 사람들을 제외하면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유리창 깨지면 경제가 발전할까…바스티아 "보이는 것이 다 아니야" 네이버한국경제 [사회, 경제] 신문에 게재되었으며 19면의 2단기사입니다.19면2단 2014.04.19 오전 3:36

"2차 세계대전이 대공황을 끝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단지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본 것이다. 이와 같은 지식은 반쪽 진리다.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 반쪽짜리 지식인이 너무 많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본문을 읽어보면 더 좋지만, 간단히 요약해보자.

양복장사의 창문을 깨서 파괴가 발생하면 유리장사의 매출이 발생하는 것부터 소비, 고용의 선순환이 일어날 것처럼 보여도, 양복장사가 다른 생산적인 곳에 쓰거나, 투자할 돈을 비생적인 데 쓴 것이니 한정적인 자원을 낭비한 것이라고 한다.

일견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한경이 저런 기사를 내면 속이 빤히 보인다.

양복장사가 한국의 재벌이라고 놓으면 어떤가?
저들이 개인 자회사를 통해 빼돌리는 회사의 자본과 기회의 유용.
저들의 과욕과 오판으로 실패한 투자들(stx, 동양, 동부,,,).

길게 얘기하면 입아프다.
양복장사가 생산적인 곳에 쓰지 않고 돈을 썩히면 자본주의 경제, 자본주의 사회에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다. 이념이 달라도 결론이 다를리가 없다.
그럼 유리창이 깨지고 가게에 불이 나는 것이 모두에게 낫다.
그래야 돈이 돈다.
그 돈은 양복장사에게 있으면 안 되는 돈이다.



이런 영악한 기사가 왜 이런 날에 나오는지 모르겠다.
난 평화주의자이다.
내 생명도, 남의 생명도 모두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