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19, 2014

파괴, 창조, 경제




2차대전이 대공황 끝냈다고?…통계수치가 만든 착시일 뿐 네이버한국경제 [경제, 사회]신문에 게재되었으며 19면의 TOP기사입니다.19면신문에 게재되었으며 19면의 TOP기사입니다. 2014.04.19 오전 3:36


매우 맘에 안드는 기사이다.

"1930년대 대공황과 관련된 두 개의 신화가 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이 대공황을 치유했다는 것이 첫 번째 신화고, 2차 세계대전이 대공황을 끝냈다는 것이 두 번째 신화다."

대공황과 관련된 신화는 저 두개뿐이 아니라 수도 없이 많다.
일본에서, 미국에서, 이제는 유럽에서 비슷한 신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엄청 가방끈이 길어서 노벨상까지 탄 사람들도 여기서 까이고, 저기서 까이고 있다.
경제학이 과학이라면 신화는 줄고 사실과 원리가 늘어야 하지만 별로 그렇지 않다.
가설이 늘어나는 것은 그나마 낫지만, 실제로는 그럴듯한 스토리, 내러티브만 늘어나고 있다.

위의 기사 중에

"2차 세계대전이 대공황을 끝냈다는 견해는 매우 위험하다. 이런 견해에 사로잡혀 있는 지식인들은 서슴지 않고 ‘전쟁과 지진, 그리고 정부지출이 경제에 이익이 된다’고 주장한다."

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에 대한 저런 천박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예전에 들었던 시나리오는 많이 다르다.
대개는 "제국주의 전쟁"과 관련된 얘기였을 것이다.

산업자본주의가 발전하면 금융자본주의로 진행하고, 자본의 규모가 커지고 독점이 강화되면서 일국의 산업과 금융은 몇개의 자본이 지배하게 되고, 경제같은 하부구조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과학, 철학 등의 모든 상부 구조도 카르텔을 형성한 독점 자본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된다. 일국 내에서 초과 이윤을 획득할 기회가 사라지면 다른 나라, 다른 대륙, 전세계에서 저렴한 자본과 자원의 공급을 찾게 된다. 다음 단계에서는 새로운 수요를 찾게 되고 다른 독점자본과의 충돌이 빈번해지고, 강도가 높아진다. 새로운 공급을 찾는 것보다 새로운 수요를 찾는 것이 더 어렵다.

충돌과정에서 나타나는 대립은 정치적, 외교적 수단으로 해소한다. 알다시피 전쟁은 외교의 연장이다. 국가간의 외교는 국제 독점자본의 이해를 대리하고 있고, 독점자본의 규모가 국가의 범위를 확실히 넘어서면 외교/전쟁은 이윤을 보존하고 늘리는 다양한 전략/전술의 하나에 불과하게 된다. 2차대전은 전세계가 완전히 분할되어 새로운 식민지를 개척할 수 없고, 새로운 수요도 만들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다.

음모론이 섞여있는 것처럼 보여도 저것이 20세기까지 자본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이 공히 세계대전을 이해하는 방식에 가까운 것이다. 경기싸이클에서 디프레션의 원인은 한마디로 초과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설비를 늘리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투자의 증가가 존재하는 수요를 과도하게 넘어서서 발생하는 것이고, 공급과잉이 사라지기 전까지 경기침체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공급과잉을 해소하는 방법은 수요을 증가시키거나 공급과잉을 해소하는 것이다.

수요, 공급 양 쪽에서 불균형을 한방에 해결하는 것이 전쟁이다.
패자와 승자 모두에게 마찬가지이다.
비슷한 것이 자연재해이다.
또 다른 것으로 후진국에 대한 원조, 후진 산업에 대한 보조가 있다.

전쟁, 자연재해는 그저 파괴로 보인다.
인간이 노력해서 만들어낸 가치가 그냥 사라지는 것이니 더 설명이 필요없다.
후진국에 대한 원조에 대해서는 다른 평가가 가능할 수 있다.
인도주의적이나, 제국주의적이나 어느 쪽이든 가치가 재생산된다고 볼 여지가 있다.
한국에 대한 60년대의 원조는 긍정적, 수십년간의 아프리카에 대한 많은 원조는 인종말살적이었다.
보조금은 전략적일 수 있고,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볼 여지가 있다. 경쟁력이 없는 산업은 쇠퇴하는 전통 산업일 수도 있고, 발전하는 초기단계의 산업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개는 가치를 파괴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창조적 파괴.
파괴적 혁신.

이런 고상한 것들은 기존에 없는 수요를 만들고, 새로운 공급, 새로운 투자가 가능하게 한다.
어떤 사람들은 초과 이윤이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 노동의 착취가 아니라 바로 저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사람들은 수십년간 모두 겪어 봐서 아는 일이지만 후진국에서는 저런 일이 항상 일어날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기껏해야 백년에 몇번 발생하는 특별한 일이라 똑똑한 사람들이 창조적 파괴를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저것이 하는 역할이 전쟁, 자연재해와 경제적인 측면에서 다른가?
정말 다른가?

파괴와 창조.
생로병사.
순환.

똑같다.

지구가 커지지 않고 외계에 식민지가 생기지 않으면, 순환하는 세상에서 죽음과 탄생은 동전의 양면이다.

창조적 파괴의 분명한 장점이 하나 있다.
과잉 공급된 설비를 태우는 것뿐 아니라, 과잉 자본을 태운다.
자본의 경쟁강도를 낮추고, 초과 이윤의 가능성을 높인다.
그러니 한국도 땅파는 창조말고, 파괴적인 창조를 하면 타버린 자본을 들고 있던 사람들을 제외하면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유리창 깨지면 경제가 발전할까…바스티아 "보이는 것이 다 아니야" 네이버한국경제 [사회, 경제] 신문에 게재되었으며 19면의 2단기사입니다.19면2단 2014.04.19 오전 3:36

"2차 세계대전이 대공황을 끝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단지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본 것이다. 이와 같은 지식은 반쪽 진리다.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 반쪽짜리 지식인이 너무 많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본문을 읽어보면 더 좋지만, 간단히 요약해보자.

양복장사의 창문을 깨서 파괴가 발생하면 유리장사의 매출이 발생하는 것부터 소비, 고용의 선순환이 일어날 것처럼 보여도, 양복장사가 다른 생산적인 곳에 쓰거나, 투자할 돈을 비생적인 데 쓴 것이니 한정적인 자원을 낭비한 것이라고 한다.

일견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한경이 저런 기사를 내면 속이 빤히 보인다.

양복장사가 한국의 재벌이라고 놓으면 어떤가?
저들이 개인 자회사를 통해 빼돌리는 회사의 자본과 기회의 유용.
저들의 과욕과 오판으로 실패한 투자들(stx, 동양, 동부,,,).

길게 얘기하면 입아프다.
양복장사가 생산적인 곳에 쓰지 않고 돈을 썩히면 자본주의 경제, 자본주의 사회에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다. 이념이 달라도 결론이 다를리가 없다.
그럼 유리창이 깨지고 가게에 불이 나는 것이 모두에게 낫다.
그래야 돈이 돈다.
그 돈은 양복장사에게 있으면 안 되는 돈이다.



이런 영악한 기사가 왜 이런 날에 나오는지 모르겠다.
난 평화주의자이다.
내 생명도, 남의 생명도 모두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