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y 13, 2014

model minority - myth, hypothesis, bias, prejudice



http://newspeppermint.com/2014/05/12/sterling-loves-koreans/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타고난 기질 때문에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은 근거 없는 가설입니다."


뉴스 페퍼민트에는 보통 좋은 정보가 많은데, 윗 문장은 껄끄러웠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타고난 기질 때문에 잘 살게 되었다" 는 것이 가설이고 근거가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나의 가설은 "20세기 동아시아 국가의 경제 성장은 다른 지역, 다른 국가, 다른 인종에서 나타난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질적인 차이를 나타낸 이유가 무엇인지는 또 다른 가설이고, 윗 글의 문장은 타고난 기질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라서 유전적, 지리적 요인보다 사회적, 문화적 요인(예를 들어 유교 문화, 교육열, 집단주의)을 의심하는 나의 생각과는 차이가 아주 큰 것이다.

타고난 기질 vs 사회, 문화적 요인.

궁금해서 원문을 찾아 보았는데 의역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완벽한 오역이다.

"Legions of social scientists and historians have debunked the myth of the Asian-American’s “natural” orientation toward economic achievement."

내 식대로 직역해 본다.

"일단의 사회과학자와 역사학자들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경제적 성취에 대한 '자연적인' 방향설정이라는 신화를 엎어버렸다."

'자연적인' 방향설정은 타고난 기질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어느 쪽이든 원래의 문장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잘 산다고 얘기한 것도 아니고, 그 이유가 타고난 기질이라고 얘기한 것도 아니다.

비슷한 듯해도 전혀 다른 얘기이다. 번역문은 예전에 일본 사람들을 경제 동물이라고 표현할 때와 비슷하게, 한국인이 경제적인 욕구, 능력을 타고난 것같은 인상을 심어준다.

가설과 신화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다.
가설은 검증가능한 것이고, 또한 반박가능한 것이다.
신화라고 표현한 것은 검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무가치한 말과 표현에 가깝다는 것이다.
물론 스토리, 내러티브를 좋아하는 최근의 시류에서는 진지한 연구자들이 신화를 쫓아다닐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 의역, 오역이 저렇게 심하면 원문과는 전혀 다른 글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원글의 내용을 관통하는 인종 차별이라는 주제에서 저자는 인종 같의 차이를 아예 인정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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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에서 동아시아계가 평균적으로 더 잘 살아도, 이유가 전문직 종사자들을 이민자로 받아들여서 그렇다는 것이다. 이것도 자료를 확인해봐야 하지만 일부 사실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60년대 이후 한국의 전문직이 미국으로 도피성 이민을 떠나던 시절과 비교해서 한국의 평균 소득과 이민자들의 평균소득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그 차이가 과거 수십, 수백배에서 최근 몇 십퍼센트 이내로 좁혀졌을 것은 확실하다.

이것이 한국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다. 동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넘어간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것이나, 2차대전 이후 동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의 경제 성장이 비교할 국가가 없는 수준으로 높다는 것을 별개의 문제로 봐야 할지 알 수 없다.

한국인이나 아시아계가 특별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싶으면 그냥 휙 둘러봐도 보이는 증거들에 대해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보편적인 특징을 무시하고, 그냥 증거가 없다고 신화라고 주장하면 거짓말이 된다.

저자가 신화라고 한 것은 자신이 최소한의 지식도 없고 조사를 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것이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다(이런 것이 신화라면 할 말이 없다. 왜? 증거가 없으니 증명할 방법도 없다. 아마 반박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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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하게 측정되는 신체 지표들(키, 몸무게 등)에서는 인종 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또한 개별 운동 능력에서도 인종 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신체능력 전반에서 인종간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로 쉽지 않다.

독일의 나찌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아리안족의 신체적 우월성을 과시하려고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것이다.
영화 25시 (게오르규 작)에서 안소니 퀸이 맡은 주인공은 아리안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순수혈통의 아리안족으로 선발되어 선전에 이용된다.
두상으로 인간의 지적능력을 판단하려는 시도도 있었고, 두개골 모양만으로도 인종, 혈통을 구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아직 한국에 존재한다.

저런 광신적인 체질인류학적, 우생학적, 골상학적 사이비들의 반대편에 인종간에는 아무런 신체적, 정신적 능력의 차이가 없다는 자들도 존재한다.
아마 그런 사람들에게는 백인의 피부가 다른 인종의 피부보다 하얗다는 신화, 혹은 근거없는 가설을 반박할 증거, 자료가 산처럼 쌓여 있을 것이다.


어떤 인종이 똑똑하다.
어떤 인종이 게으르다.
어떤 인종이 노예 근성이 강하다.
어떤 인종이 배신을 잘 한다.
어떤 인종이 더럽다.

이런 것을 증명, 반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비슷한 내용을 구체적이고, 측정가능한 지표로 바꾸어 표현하면 관련된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어떤 인종이 더 뚱뚱하다.
어떤 인종이 BMI가 높다.
어떤 인종에 비만한 사람이 많다.

비슷해 보여도 조금씩 다르다.
마찬가지로 어떤 인종이 똑똑한지는 판단할 수 없어도, IQ가 높은지 낮은지는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증거의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다.
왜?
인간의 보편적인 지적 능력을 평가하려는 시도는 과학이라는 미명아래 인종차별을 합리화하는데 이용될 수 있기 때문에 싹부터 막아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벌써 오래 전에 미국에서 '종형곡선'을 둘러싼 정치적이고, 비과학적인 논쟁에서 확인된 것이다.
IQ test가 가진 한계를 알면, 그것이 평가하는 부분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과학의 영역에서 평가할 부분이 충분히 많아도,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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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에 대한 편견이 미국에서 심각한 문제라는 것은 여전하다.
최근에도 affirmative action과 관련한 논쟁으로 시끄러운 모양이다.
하버드의 흑인 학생들이 나도 하버드생이라고 캠페인을 한다고 한다.

http://en.wikipedia.org/wiki/I,_Too,_Am_Harvard


인종차별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없어져야 할 것이 분명하다.
어떤 사건, 현상에 대한 판단에 인종차별을 끌어들이는 순간 대개는 그것으로 끝이다.
누가 인종차별을 하건, 누가 인종차별을 의심하건 차이는 없다.

외국에 나가보면 중국사람들이 옆에 있는 것이 가장 싫다.
이것은 중국 사람들을 내가 찾아서 피한다는 것이 아니고, 중국사람들이 옆에 있으면 불편하고, 그 사람들이 중국인이라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되어서 자리를 피하게 된다는 것에 가깝다.
그런데 과거에 일로 만난 중국사람들은 보통의 다른 외국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종, 국가가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지위, 관계가 중요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인들에 대한 나의 편견이 근거가 박약해도 새로운 경험이 없는 이상 바뀌지 않을 것이다. 백수가 된 이상 경험적으로는 그럴 증거를 모을  방법이 없다.

인종차별이든 뭐든 누가 누구를 선호하는 것을 없앨 수는 없다.
현실에서 그 원인이 유전적이냐 가족적이냐 환경적이냐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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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학생이 미국 대학에서 수십명을 죽였을 때 현지 한국인들은 사과를 하고, 애도의 촛불 예배를 했다.
미국인들은 한국, 한국인과 상관없는 일이니 사과를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한국인들이 인종차별적인 것인가?
한국인들이 유교적인 것인가?
한국인들이 집단적인 것인가?
한국인들이 오지랍이 넓은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인종차별적인 것인가?
아니다.
왜?

개인을 개인으로 보면 인종으로 분류하는 것의 의미가 없다.
개인을 어떤 집단의 일부로 보는 사람들이 차별을 하는 것이고, 자신을 개인이 아니라 집단의 일부로 보는 사람들이 차별을 조장하는 것이다.

나는 개인을 집단의 일부로 보는 어떠한 시각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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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을 개인으로 보는 것.
필요한 것은 그것이다.

개인이 나의 집단에 속하는지, 아니면 너의 집단에 속하는지를 구분하는 것.
그것이 피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니 가족이었으면 그렇게 했겠냐는 말이 나오는 것이 불편하다.
니 가족처럼 생각해달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불편하다.

내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도 인간으로서 지킬 것은 지켜야 그게 인간이다.
가족한테만 잘하는 것은 동물이라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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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소수자가 아니라 인간으로 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또한 인간을 집단의 일부가 아니라 개인으로 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