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2일 목요일

알림


6월 27일 아버지가 83세로 돌아가셨습니다.
이후 장례식과 삼우제까지 모두 잘 치렀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온 국민이 조심하는 상황에서, 알면 오셔야 된다고 생각하실 분들때문에 미리 알리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려운 가정의 차남으로 태어나 배우지 못하셨지만, 국민학교 졸업 후 10여년을 신문배달, 행상, 점원 등으로 일하면서 중학교 과정을 스스로 공부하셨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신문배달을 하던  관공서에서 청소와 심부름을 하게 되었고, 사환, 임시직, 기능직 공무원을 할 기회를 얻으셨습니다.
내부 승진 시험을 통해 일반직 공무원을 확충하던 70년대의 특별 채용에서 대졸자, 고졸자를 포함하는 수십대일의 경쟁자를 뚫고 일반직 공무원이 되신 것을 평생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이후 공무원 생활을 오래 하셨고, 공사로 바뀐 뒤로 정년까지 근무하셨습니다.


정년 이후 생활에 잘 적응해서 건강하게 사셨지만 5년 전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8개월 전에 거동이 불편해지시면서 요양병원에 입원하셨고, 이후에 또 다른 뇌병변이 확인된 이후 침대를 거의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로 1월까지 지내셨습니다


1월 한국에도 코로나가 퍼진 이후 2월부터 요양병원의 면회가 전면 금지되었습니다.
4월에 한번 외부 병원 진료를 위해 외출을 하셨지만, 그것이 가족들과의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은 가족 중 아무도 몰랐습니다.
나머지 가족들은 5개월 동안 전혀 면회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6월 27일 새벽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지병이 있고, 노쇠하셨지만 간호사, 간병인을 통해서 들은 바로는 전날까지 특별한 이상없이 식사를 하셨고, 눈을 마주치고 몇 마디 말씀도 하셨다고 합니다.


마지막에 아버지를 보셨던 의사에 따르면 당직 중에 연락을 받았고, 와서 보니 급격히 낮아졌던 혈압이 몇 십분 간  회복되는 듯하다가 빠르게 떨어진 이후 회복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 모든 상황이 약 한두시간 이내에 발생했고 가족에게 연락을 취한 것은 돌아가시기 직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15분 거리에 살던 가족이 있었음에도 아무도 임종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몇 달을 요양병원에 고립되어 홀로 지내셨고,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적절한 처치를 받으셨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마음 속에 연민과 의심과 분노와 회한이 끓어올랐지만 병원관련자들의  일방적이고 방어적인 대답 속에서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기는 어려웠습니다.
가족들은 마지막 한달 동안에 벌어진 몇 가지 상황에 대한 다른 불만을 토로했으나,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라 장례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큰 문제였고 병원에 사망 과정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것이 가족에게 폐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큰 고통없이, 오래 고생하시지 않고 돌아가셨다는 것에 위안을 받는 분도 있었습니다.


며칠이 지났고 당장 필요한 절차는 거의 완료가 되었지만, 터질 것 같은 가슴 속의 응어리는 그대로입니다.
아직 그 응어리가 슬픔은 아닌 것 같고, 위로받을 준비도 된 것 같지 않습니다.
기회가 되면 벌어졌던 몇 가지 일들을 기록하면서 마음의 정리를 하려고 합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