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9일 금요일

안전 과민증


안전 불감증이란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안전 과민증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아마 나에게만 있는 증상일 것이다.

매일 매일 안전사고에 대한 기사를 신문에서 본다.
오늘 아침에도 한 어린이가 차에 치어죽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어린이집에서 달려나오던 어린이가 불법주정차된 차량 뒤에서 튀어나온 차에 치었고, 그 차는 30km 속도제한 규정을 지키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스쿨존 표시는 되어 있었다고 한다.
엄마는 막 어린이집에서 나오고 있었다고 한다.
책임소재를 법적으로 따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고 발생이 줄어야 된다는 측면에서는 시야를 가리는 주정차, 혹은 의심되는 과속에만 원인을 돌리는 것은 부족하다.


어제 관리사무소에서 푸닥거리를 했다.
대다수의 안전불감증, 나의 안전과민증이 충돌한 결과지만, 졌다. 항상 그렇듯이.

단지 내 어린이집 앞에 공터가 있다.
과거에 배든민턴 코트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동호회원들만 독점하는데다 종일 시끄럽기 때문에 철거되었다. 지금은 애들 놀이터, 운동장으로 쓰인다.
3월부터 오후에 동네를 돌아다니는 일이 잦아져서 애들이 놀고 있는 것을 보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초등학생(?)들이 야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얼마전 별 생각없이 지나가다가 공이 눈앞을 휙 지나가는 경험을 했다.
대개 화단에 눈을 팔고 있으니 깜짝 놀랐다.
덩치가 나만한 애가 포함된 애들에게 학교운동장으로 가라고 했더니, 잠시 꾸물거린다.
그래도 애들이라고 인상을 쓰고 버텼더니 짐을 주섬주섬 챙긴다.
그런데 한 애가 야구방망이를 집어던지더니 한 20m를 발로 차고 가면서 분을 참지 못한다.
내 새끼 같았으면 반쯤 죽였겠지만, 참았다.

100 m 이내에 초등학교, 중학교가 하나씩 있다. 방과후에 대개 운동장이 비어있다.
거기라고 야구가 안전할 리는 없다.
그러나 중학교에는 보통 놀고 있는 애들이 없다.

이후 2번정도 애들이 야구를 하는 것을 볼 때마다 관리사무소에 와이프가 전화를 했다.
그러면 애들이 어디론가 간다.
최근 관리소장이 바뀌었다.
어제도 전화를 했는데, 애들이 가지 않는다.
3번정도 와이프가 전화를 했더니 조용히 놀라고 시켰다고 한다.
시끄러워서 그러는 줄 아는 모양이다. 그런데 애들은 조용히 노는 법이 없다.

관리소장과도 얘기를 했지만, 공터가 운동시설이라 막을 수 없고 애들 부모가 반발한다고 한다.
애들부모와 얘기했을리는 없고, 귀찮은 것이다.

관리사무소에 내려갔더니, 마침 주민대표와 관리소장이 같이 있었다.
얘기를 해보니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일단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인만한 애들이 야구를 하면, 프로가 아니어도 공은 흉기이다.
위험한지 안 한지 같이 가보자고 했더니.
싫다고 한다. 공터는 사무소에서 20 m 정도 떨어져 있다.
운동시설이면 주민을 보호할 담장이 있어야 한다고 하니.
돈이 든다.
근처에 운동장이 있으니 위험한 운동은 가서 해야된다고 하니.
주민대표의 애가 학교운동장에서 삥을 뜯겼다고 한다.
야구를 하더라도 물렁공을 쓰고, 큰 애들은 못하게 해야된다고 했더니.
그것은 주의사항을 담은 표지를 운동장앞에 걸어놓으면 된다고 한다.
야구하는 애들은 정해져 있으니, 처음에는 그러한 규칙을 알려줘야 따를 것이라고 했더니.
그럴 시간, 그럴 사람은 없다고 한다.
달라진 것도 없는데 누가 다치면 어떻게 할 거냐고 했더니.
누가 다쳤냐고 한다.

야구공에 맞아서 다치는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바뀌지 않을 것이다.
다쳐도 안 바뀔 수도 있다.
위험을 생활의 일부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애들, 부모들, 어른들이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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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과민증만큼 안전 불감증도 이상한 말이다.
위험 불감증이라고 해야 할텐데, 왜 반대로 부르게 되었을까?






댓글 7개:

  1. 전에 우리가 이야기 했던...

    음식점에서 애들이 떠들면.. 종업원과.. 주인이 조용해 시켜야 한다 와 일맥 상통하는 이야기네요..

    식당에서 손님들이 편하게 식사하도록 떠드는 사람들에겐 주의를 주고 안되면 적극적 제지를 하는게 주인의 의무인데 손님들끼리 알아서 하고 난 욕을 안먹으련다의 태도는 틀린것이다 가 저희들의결론이었죠

    물론.. 대다수의 결론은 모르겠지만.

    위의 경우도

    그런거 관리하도록 뽑은 동대표이고.. 그런거 관리하도록 돈 받는 관리사무소인데...

    내가 왜? 그런거 까지 해야되나? 가 그사람들 생각일 겁니다.. 자기들이 알아서 해야지...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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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제는 나이먹으면 저런 것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 무뎌질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얘기하고 나서 답답하고 한심하고 화나고 그러는 것이 더 오래가요.
      아침에 기사를 보면서 또 그러고...
      나도 세상도 작은 것이 바뀌는 것도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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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생각해보니 블로그, 카페 등에 뭔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답답한 것이 술이나 담배로 안 풀려서 그랬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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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저도 그런게 있는거 같아요... 막 욕을 하면.. 뭔가 배설하는 기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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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그것도 있고, 좌크님처럼 들어주는 사람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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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세상에 많은 불행한 일들이 운이 없어 일어나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은 부주의함에서 일어나지 않나 싶습니다.
      횡단보도에 버스가 빗길에 미끄러져 인도를 덥치더라도 가로수나 전봇대 뒤에 한발자국 떨어져 있었던 사람은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위험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스스로 늘리는 사람도 많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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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함께 위험을 해결하는 것이 어려우니, 한계가 있어도 일단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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