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수요일

대피에 대한 기억



평생동안 대피훈련 같은 것을 따로 받아 본 기억이 없다.
초등학교 시절에 민방위 훈련에 책상 밑으로 들어가 본 것 정도가 전부이다.
그러나 천성이 겁이 많아서 그런지 위험이 느껴지면 몸이 굳는다.
거기에 흥분을 하면 손도 떨리고, 목소리도 떨려서 말도 잘 못한다.

뭐든지 위험이 존재하면 열심히 사전에 준비를 한다.
각종 시나리오를 최대한 쥐어짜낸 후에 그에 맞는 대응방법을 생각해보고 연습을 한다.
연습하기 어려운 것은 자꾸 상황을 반복해서 머릿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한다.
그래도 최선은 위험을 피하는 것이다.

애가 유치원에 갔을 때 첫 시간에 대피훈련을 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신기했다.
한번만 연습해두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안 해보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직장생활을 할 때 종종 화재 경보가 울리곤 했다.
실제상황이 발생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나는 13층에서 부하직원과 함께 계단을 통해 대피를 했었다.
나한테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 직원은 왜 이리 귀찮게 하냐는 표정이 역력했다.
같은 층의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대피하지 않으니 이해할 수 있기는 했다.

나는 왜 그렇게 열심히 대피했을까?
그 층의 내부벽 전체가 샌드위치 패널이었다.
일단 화재가 발생하면 수분 내에 유독가스로 건물을 채워서 왠만하면 생존자를 남기지 않는다는 그것이다.
사람 목숨값으로 돈을 벌었다는 회장이 그런 건물에서 수백명 이상을 근무시킨다.
지금도 그럴지는 모른다.
다들 살아있기는 할 것이다.

왜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대피하지 않았을까?
나처럼 삶에 대한 애착이 없어서였을까?
목숨이 여러개여서였을까?
왜 대피 안 해? 라고 물으면 그냥들 웃었다.



댓글 4개:

  1. 이렇게 해도 아무일 없이 잘 살아왔어! 라는 대답의 힘이 점점 줄어드는데도.....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 지금의 세태인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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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체적인 변화가 생기려면 학교 교육이 역할을 해야하는데, 전혀 안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기대만큼의 속도는 아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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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예전에 토론토 출장 중에..
    어떤 Inn에서 숙소를 잡고 거기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엄청나게 시끄러운 화재 경보기가 울렸죠.

    첨에는 무슨 소린가 의아했는데, 사람들이 나가는 것을 보고 덩달아, 저와 동료는 밖으로 빠져나가고........
    호텔 마당에서 다른 방에 있던 동료들을 찾는데 안 보이더라는.......

    소방차도 시끄럽게 오고, 무엇보다도 화재 경보기 알람이 참기 힘들 정도로 거센데도 묵묵히 호텔방에서 있더라는.....
    아연했던 기억..

    1, 2층에 있었더라면 그나마 이해라도 하겠지만, 무려 5층...
    전화로 왜 안 나오냐고 물어 보니, 불이 난것 같지 않다고........
    ..
    ..
    오~래 전에... 그러나 그리 오래되지 않은....

    어떤 이가 ... 자기 경험담을 얘기하는데......
    외국 엔지니어와 어떤 한국 엔진지어가 산 꼭대기에 있는 RF 안테나를 살펴보러 갔는데.... 외국 엔지니어가 석면이 있는 임시 건물이라는 것을 알고는 들어가지 않겠더라는 겁니다.

    한국 엔지니어입장에서는 그 외국 엔지니어가 기계를 살펴보고 해야하는데, 들어가지 않아서 난감해 했다는...
    그런 경험담을 사람들한테 얘기를 하는데, 웃음이 있었는데.... 내가 느꼈던 것은 비웃음이 아니었을지...
    그 때 마스크를 결국은 구해서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
    ..

    황사이거나 미세먼지가 좀 심한것 같은데...
    이거 건강에 미치는 영향같은거 조사했나 모르겠네요.
    사람들한테 알려주는 것인지도 궁금....
    그래봐야 딱히 무언가를 할 수 있는게 없지만......(불안심리가 많이 퍼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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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네요. 외국인을 상대하거나, 외국에 살아보면 안전에 대한 인식 차이는 확실히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어려서 밥 남기면 혼나듯이 세뇌교육을 어려서부터 시키면 달라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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